쉽게 알고 이해하고 싶은 가톨릭교리

[알고 싶은 가톨릭교리] 1권. 들어가는 말 1.

James the Great (대)야고보 2023. 9. 8. 15:32

[ NIHIL AMORI CHRISTI PRAEPONERE ]

[아무것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마십시오.]

 

<들어가는 말>

1.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비록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올바르고 착하게 살면 그리스도인처럼 인정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론은 원래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부터 있었는데, 20세기 중반에 독일의 세계적인 가톨릭 신학자인 카를 라너(Karl Rahner, SJ 1904-1984)가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라너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모든 인간 안에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는 '초본성적인 실존'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초본성적인 실존이란, 인간을 하느님께 향하게 하고 은총으로 향하게 하는 능력이 모든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선한 의지나 양심을 갖게 되는 것이 그 근거이며, 이 초본성적인 실존의 능력으로 인간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하느님과 통교할 수 있으며, 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하느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에 따르면 비그리스도인일지라도 구원이 가능한 경우가 있는데, 첫째, 초본성적 실존이 제대로 작용할 때, 둘째,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를 모르지만 착하고 올바르게 살 때(예를 들어, 예수가 세상에 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처럼)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라면,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 때문에 세례와 신앙 없이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라너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의 지지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라너의 말처럼 초본성적 실존에 따라 살면 세례 받지 않고, 그리스도를 몰라도 구원이 가능할까요? 만일 구원의 조건이 착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라면, 굳이 세례를 받고 교회에 소속될 필요가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답변은 무엇일까요?

 

먼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인간에게 초본성적인 실존, 즉 하느님의 영이 모든 인간 안에 주어져 있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동시에 성경은 인간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모상이, 인간이 저지른 죄(원죄) 때문에 훼손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은 원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원죄는 인간의 불순종에 의해 생겨났으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영혼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원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리스도의 도움과 교회의 중재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세례를 통해서만 원죄로부터 정화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 모상으로서 모든 인간이 지닌 영적 능력과 이성적 능력은 인정하지만, 신앙과 세례의 중요성이 반드시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입니다.

 

만일 세례 없이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교회에서 거행되는 성사가 간과될 수 있습니다. 성사는 가톨릭교회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성사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 전체에서 다룰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참하느님이고, 참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 구원의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 즉 하느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성사, 그중에서도 성체성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하느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책에서 설명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인간에게 은총과 행복과 구원은 다름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합니다. 신학과 교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리스도 중심성'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깊은 본질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함께 사셨던 예수님에게 있음을 설명하고 해설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입니다.

(p.8~11)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